
남양주 백봉산 자락, 큰길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증류소. 2020년, 이곳에서 누군가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을 것이다. "한국이 위스키를? 일본, 대만을 따라 갈수 있을까?"
5년이 지난 지금, 그 의심은 완전히 뒤집혔다. "기원(Ki One)"이라는 이름의 이 작은 증류소가, 세계 유명한 위스키와 아이리시와 버번을 다 이기고 "전 세계 위스키 중 최고"라는 타이틀을 두 번이나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국과 미국,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두 대회에서, 기원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조금 특별했다.
기원을 만든 사람들을 보면 이 술이 왜 특별한지 조금씩 이해가 된다. 재미교포 출신의 대표,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마스터 디스틸러,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해온 한국인 직원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서로 다른 위스키의 전통을 살아온 세 개의 세계가 한 증류소 안에서 만났다.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전국 100여 곳을 돌아다닌 끝에 결국 낙점한 곳이 지금의 백봉산 자락이었다고 한다. 물과 바람, 온도까지 재가며 자리를 고른 그 시간이, 지금 잔에 담긴 향이 되어준 셈이다.

"2025년 9월, 영국 IWSC." 1969년부터 이어져 온 이 대회에는 매년 4천 종이 넘는 술이 출품되고, 전 세계 200여 명의 전문가가 눈을 가리고 맛본다. 이름도, 나라도, 가격도 모른 채 오직 잔 속의 맛으로만 평가받는 자리다. 그 냉정한 무대에서 "기원 유니콘"이 스카치·아이리시·버번을 제외한 전 세계 위스키 부문 "대상(트로피)"을 차지했다. 심사위원의 평은 짧고도 강렬했다. "잊을 수 없는 경험."
"2025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IWSC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원은 대만의 강자 카발란, 인도의 명가 암룻과 다시 마주 앉았다. 아시아 위스키의 자존심이 걸린 자리였다. 여기서 "기원 시그니처"가 셰리와 와인 캐스크에서 우러난 달콤함, 그리고 한국적인 스파이스의 균형감으로 심사위원단의 마음을 흔들었고, 결국 대상급인 "베스트 오브 클래스"를 들어 올렸다. 함께 나간 "기원 유니콘"은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더블 골드"를 받았다.
두 달 사이 일어난 이 두 번의 승리로, 기원은 국내 위스키 최초로 세계 양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제패한 이름이 됐다.

기원의 시그니처 라인에는 유독 동물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냥 지은 이름이 아니다. 이 술을 만든 세 개의 세계를 각각 상징한다.
"기원 호랑이"는 한국을 향한 잔이다. 셰리와 와인 캐스크에서 오래 잠들었던 술답게, 달콤하고 과실 향이 가득 퍼진다. "기원 독수리"는 대표가 나고 자란 미국을 담았다. 묵직하고 대담해서, 한 모금이면 존재감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기원 유니콘"은 스코틀랜드를 향한 헌사다. 스모키하고 흙내음이 도는 피트 위스키로, 이번 두 번의 수상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도수는 46%, 700ml 한 병에 11만 원대. CU나 GS25 같은 편의점에서도 만날 수 있을 만큼,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술이다.

한국 위스키는 오랫동안 "그럴싸하게 따라 한 것"이라는 시선 아래 놓여 있었다. 하지만 기원의 수상은 그 오래된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해 전통의 본고장들 브랜드들과 겨뤄, 이름도 국적도 지운 채 오직 맛으로만 정상에 올랐다. 한국 술의 세계 도전은 사과 증류주 "추사"가 오크통 숙성으로 한국형 브랜디의 길을 열었고, 오래된 소주 양조장들도 하나둘 오크통을 들이며 자신만의 숙성 스피릿을 실험하고 있다. 기원은 그 흐름 한가운데서, 가장 먼저 세계의 인정을 받아낸 이름이 되었다.
다음에 위스키 한 병을 고를 일이 있다면, 유명 위스키나 일본의 유명한 이름 대신 남양주 백봉산에서 5년을 버텨온 이 술 한 병을 먼저 집어봐도 좋겠다.
잔에 코를 대는 순간, 아무도 믿지 않았던 기원만의 향에 매료될지도 모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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